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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인터뷰] 코로나와 함께한 1년 간의 파견 이야기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봄입니다.

오늘은 곽예찬 지부장의 인터뷰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1년 간의 말라위 파견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환영의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BOM: 안녕하세요. 귀국 소감을 묻기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곽예찬: 안녕하세요. 2020년 1월 말라위 사무소 지부장으로 파견되었다가 2021년 1월 한국으로 돌아온 곽예찬입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국제보건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고, 현재는 국제보건영역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를 통해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봉사단원으로 1년간 활동하며 출간한 “Tajikistan; 타지키스탄 일 년간의 사진 그리고 국제개발”의 저자이며, 프리랜서 국제개발 포토그래퍼이기도 합니다.

 

<@lawudy_kwak; 아이티, 재건지원단 아이스브레이킹>

 

BOM: 어느덧 말라위에서 돌아온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네요.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말라위를 생각할 때 어떤가요?

곽예찬: 사실 말라위에 있을 때 ‘귀국해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에 한국의 정교하고 오차 없는 삶을 다시 살아가다 보니 종종 말라위에서의 투박한 생활들이 그리워 지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높은 건물과 미세먼지로 인해 깨끗한 하늘을 보지 못해서인지, 말라위에서 높은 건물이 없고 공해가 적어 맑은 하늘을 보던 시간이 매우 그립습니다. 때로는 발전으로 인한 편안함 보다 투박하고 개발이 덜된 순수한 말라위가 생각납니다.

BOM: 말라위 사무소 지부장 파견은 어떤 계기로 가게 되었나요?

곽예찬: 자기소개는 지나치게 웅장했지만, 국제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장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2020년도 1월 말라위에 지부장으로 파견 나오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진행되었지만 본부에서 많은 수고로 지원해주신 덕분에 잘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웃음)

 

BOM: 그렇다면 국제보건을 공부하시고, 국제개발영역에 종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곽예찬: 2016-2017년도에 인생의 십일조를 할애한다는 생각으로, 타지키스탄으로 봉사단원으로서 파견 길에 올랐었습니다. 13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심정지환자가 발생하였고, 약 3시간동안 CPR(심폐소생술)을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원 전공의 영역으로 돌아가려 하였지만,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국제보건학 석사과정과 더불어 기존의 특기였던 사진, 영상촬영을 활용하여 국제개발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lawudy_kwak; 몽골, 성형외과 수술 기록>

 

BOM: 그럼 지금까지 어떤 국가들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셨는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곽예찬: 가장 처음 국제개발의 영역으로 발을 들인 계기는 1개월간의 아이티 지진피해 재건지원단 4기 활동입니다. 이후 타지키스탄 굿네이버스에서 식수위생, 미디어교육 등의 활동을 하였고, 이어 미얀마,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골, 인도, 마다가스카르등 몇몇 국가에서 국제 의료, 보건관련 활동들을 하였습니다.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국가는 마다가스카르입니다.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거리에서 바라본 바오밥 나무들이 제가 꼭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굶주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느 모자의 모습을 보고,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lawudy_kwak; 마다가스카르, 어린 바오밥>

 

BOM: 참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역할을 가지고 활동하셨었네요. 국가마다 업무 환경도, 상황도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말라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땠나요? 1년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곽예찬: 말라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말라위 사무소가 2013년 개소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많은 부분 안정이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지직원들도 각자의 역할을 능숙히 수행하고 있어 오히려 지부장인 제가 많은 도움을 받으며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과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업무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이동형 안과수술차량을 이용해 안과 검진과 백내장 수술을 받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실명예방사업의 전반적인 효과를 측정하는 조사활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파견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주민들과 대면하여 조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위험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열정적인 직원들과 함께 방역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지역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아프리카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1년간 많은 변화과 제약이 있었지만 단 한 명의 감염없이 조사를 완수하여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lawudy_kwak; 말라위, 임팩트 서베이 진행 중>

 

BOM: 1년간 말라위에서 지부장으로 생활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그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곽예찬: ‘가장 의미가 있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의 활동이 적어도 한 명의 말라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환경, 사람을 비롯한 모든 순간이 제게는 값진 시간입니다. 한가지 사건을 말씀 드리자면, 서베이 및 검진을 하러 마을을 순회하고 있을 때, 어느 노인이 저희 차를 멈춰 세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직원들은 긴장 했지만, 그 노인의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현지어로 직원에게 무언가 말하던 노인은 말끝에 “지코모(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연신 반복하였고, 현지인 직원에게 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직원은 노인이 ‘몇 년 전 우리(프로젝트 봄)를 통해 눈 수술을 받았던 사람인데, 수술 받기 전 도움 없이는 집 밖을 나서는 것 조차 불가능했는데 안과 수술 받은 뒤로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수술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저와 직원들은 ‘건강히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전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과업을 마무리 했던 그 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BOM: 코로나-19속에서 누구보다도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조금 더 해보고 싶은 일이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곽예찬: 해외를 돌아다니며 국제개발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때때로 좋은 기회로 각자 수행했던 프로젝트, 국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엇보다 봉사단원으로 국제개발영역에 첫발을 내딛는 초급 활동가들을 만날 때면, 제가 처음 발걸음을 딛었던 기억이 스쳐 갑니다.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제도적, 업무적으로 그들을 받쳐줄 안전망과 오래오래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곤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국제개발분야에서 개인의 경험의 공유와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부족한 제 자신을 더 채우고, 제가 가진 것으로 사람들을 지원하는 전문 지원가의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lawudy_kwak; 말라위, 성과관리활동 준비중>

 

다양한 국가와 역할로 열정적으로 일한,

그리고 매 순간마다 진심이었던 곽예찬 매니저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